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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다이고 (下醍醐)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賴)가 재건한 정면의 인왕문(서대문)을 지나면, 광대한 시모가람(下伽藍)과 만나 실 수 있습니다.
시모가람(下伽藍)의 중심에 있는 금당(金堂)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에 의해, 키슈(紀州, 현재의 와카야마현)의 유아사(湯浅)라는 곳에서 이전된 것으로, 주요부분은 헤이안(平安) 말기의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본존의 약사여래(藥師如來)와 좌우의 부처는 가마쿠라(鎌倉)시대의 작품으로, 모두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있으며, 국보인 5층탑은 다이고(醍醐)천황의 명복을 빌기위해 수자쿠(朱雀) 천황이 기공해, 무라카미(村上) 천황 텐랴쿠(天歷) 5년(951)에 완성되었습니다.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5층탑은 내부의 벽화가, 일본 밀교회화의 원류를 이루고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시모가람에는, 청롱궁본전(淸瀧宮本殿, 중요문화재), 조사당(祖師堂), 부동당(不動堂), 대강당(大講堂), 여인당(女人堂), 변천당(辯天堂)등의 많은 당우(堂宇)가 점재해 있으며, 다이고지(醍醐寺)에는 가미다이고(上醍醐)와 시모다이고(下醍醐) 모두 합쳐서 6동의 국보, 10동의 중요문화재가 있습니다.

시모다이고(下醍醐)의 가람(伽藍)을 보세요.

서대문(西大門, 일명 인왕문 , 중요문화재)

금당(金堂)이 재건된 후,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賴)가 케쵸(慶長) 10년(1605)에 재건한 것입니다. 인왕문(仁王門)에 안치되어 있는 인왕상(仁王像, 중요문화재)은, 원래 남대문에 모셔져있던 존불상으로, 헤이안(平安) 말기의 쵸쇼(長承) 3년(1134)에 만들어진 불상인데, 몸 안의 묵서(墨書)와 납찰(納札-사찰이나 신사참배후 자신의 기원, 소망등을 적어 신사에 바치는 일종의 부적) 등에 남대문에서 옮겨진 경위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롱궁본전(淸瀧宮本殿)―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중요문화재)
/청롱궁배전(淸瀧宮拜殿)

다이고지(醍醐寺)를 지키고 있는 수호신인 청롱권현(清瀧権現)을 모시고있는 곳으로, 에초(永長) 2년(1097)에 최초로 건립된 가미다이고(上醍醐)에서 분신을 모셔온후, 본전 앞에서 청롱회(淸瀧會, 법회)가 열리곤 했지만 분메(文明)의 난에의해 소실 되어버렸습니다. 현재의 본전은 에쇼(永正) 14년(1517)에 재건 되어, 케쵸(慶長) 4년(1599)에 주지승인 기엔(義演)에 의해 배전(拜殿)이 정비되어, 매년 4월 1일부터 21일까지, 청롱권현 법회(淸瀧權現法會)라는 명목의 여러 종류의 법요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금당(金堂) ―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국보)

다이고지(醍醐寺)의 금당(金堂)은, 다이고(醍醐) 천황의 기원에 의해 엔기(延喜) 4년(904)년에 건립되었고, 당시에는 석가당(釈迦堂)이라고 불렸지만, 안타깝게도 에닌(永仁) 3년 방화에의해 소실고 말았습니다.
현재의 금당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다이고(醍醐)의 벚꽃놀이」전에 재건을 명하자, 그의 뜻을 따라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賴)가, 인왕문(仁王門, 西大門)과 함께 키슈(紀州, 현재의 와카야마현)의 유아사(湯浅)의 만간지(満願寺)의 본당을 이전한 것으로, 헤이안 말기의 웅대한 건축물이다.
이 금당(金堂)이야말로, 다이고지의 중심당이며, 안치되어 있는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座像)이 다이고지의 본존이다.

금당(金堂)의 내부
― 금당 본존약사삼존(本尊薬師三尊, 중요문화재)

금당(金堂)의 중앙에는 약사삼존상(薬師三尊像, 중앙:약사여래, 좌우의 부처: 닛코(日光)・겟코보살(月光菩薩)이 봉안되어있으며, 헤이안 초기의 단상(檀像)조각을 본떠만든 가마쿠라(鎌倉) 초기의 복고풍 수작입니다. 약사삼존(薬師三尊)의 좌우에는,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 헤이안 시대)이 배치돼있습니다.

5층탑 ―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국보)

다이고(醍醐)천황의 명복을 빌기위해, 첫째 왕자인 수자쿠(朱雀)천황이 기공해, 둘째 왕자인 무라카미(村上)천황 텐랴쿠(天歷) 5년(951)에 완성되었습니다. 1층 내부에는 양계만다라(兩界曼茶羅)와 진언팔조(眞言八祖)가 그려져있어, 일본 밀교회화의 원류를 이루고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높이는 38미터로, 탑 꼭대기위의 상륜(相輪)은 길이가 13미터로 탑 높이의 1/3을 차지하고 있어, 탑에 전체적인 안정감을 줍니다.

5층탑의 1층 벽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국보)<판자에 색칠해 그린 그림>

5층탑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탑의 1층 내부에 그려진 벽화 자체도 국보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이 벽화는 일본의 밀교회화의 원류를 이루는 것으로 일컬어져, 양계만다라(両界曼荼羅)의 모든 존엄의 대상과 진언팔조상(眞言八祖像)이 빠짐없이 그려져있고, 또한 10세기의 회화로는 유일하게 제작년도가 명확해 불교회화의 수작으로 높은 평가를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진언팔조상(眞言八祖像)에 있는 쿠카이조(空海藏)는 현존하는 쿠카이의 그림중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 역사부터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부동당(不動堂) / 호마도장(護魔道場)

당(堂)의 내부에는 부동명왕을 중심으로 5개의 명왕이 안치되어 있으며, 당우 앞의 호마도장(護摩道場)에서는 당산파(當山派) 수행도(修行道)의 시등호마(柴燈護摩)가 분향되어 세계평화 등 다양한 기원을 합니다.

진여삼매야당(眞如三昧耶堂)

 

조사당(祖師堂)

케쵸(慶長) 10년(1605) 9월에 주지승인 기엔준삼후(義演准后)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진언종(眞言宗)을 창설한 고보대사(弘法大師), 쿠카이(空海)와, 그 손자 제자로 다이고지를 지은 리겐대사(理源大師)와 성보(聖寶) 등이 모셔져 있습니다. 고보대사의 탄생일인 6월 15일에는 성대한 탄생기념 행사가 열립니다.

대강당(大講堂)

대강당(大講堂)을 중심으로 펼쳐진, 린센(林泉-숲과 샘물을 배치해 만든 정원에서 전법원대강당(傳法院大講堂)을 조망하는 곳)및 변천당(辯天堂), 지장당(地藏堂), 종루(鐘樓), 전법학원(傳法學院)을 총칭해 대전법원(大傳法院)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모든 당들은 다이고(醍醐) 천황 사후 천년을 기념해, 쇼와5년(1930)에 야마구치 겐도(山口玄洞) 거사(居士)의 기증에 의해 건축된것입니다. 대강당(大講堂)은 돌을 쌓아올린 토대위에 세우는 사각형태의 지붕 건축물(보형조 양식)로, 대강당(大講堂)안에 있는 전법학원(傳法學院)은 불도수행에 뜻을 품은 사람들이 수련하는 도장이기도 합니다.
당의 내부에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 말기에 제작된 다이고지 최대의 목조상인 아미타여래좌상(阿彌陀如來座象)이 모셔져있으며, 대일여래좌상(大日如來座象)이나 심사대장(深沙大將), 대흑천신(大黑天神) 그리고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안치되어있습니다.

변천당(辯天堂)

단풍과 은행이 물드는 계절에는 주칠을 한 변천당(辯天堂)이 연못의 수면과 잘 어울리는 단풍의 명소입니다. 변천당 내부에는 음악 등 학예와 지식의 여신인 변재천(辯財天)이 모셔져 있습니다.

성신원(成身院) 일명 여인당(女人堂)

가미다이고(上醍醐)에 가는 길의 입구로 돼있는 건물이며, 옛날에 여성들이 이곳에서 산상의 모든 부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해서, 통상 여인당(女人堂)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현재의 본당에는 에도시대 초기에 재건되었다고 하는 본존에는 산상의 준저관음(准胝觀音)의 분신이 모셔져있습니다.
또한, 본당의 앞에는 부동명왕(不動明王), 리겐대사(理源大師), 미륵보살(彌勒菩薩), 역행자(役行者), 지장보살(地蔵菩薩)이 모셔져있습니다.

보은원(報恩院)

원래는 가미다이고(上醍醐)에 있던 극락방을 다이고지 제35대 주지 켄진(憲深) 승정이 활동거점으로 하면서 보은원(報恩院)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 그 기원입니다. 그후 고우다 (後宇多) 법황의 명령으로 시모다이고(下醍醐)로 옮겼다가 메이지시대(明治時代)에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여기서는 매일 오후1시부터 당내에서 호마(護摩)가 분향되어 본존 부동명왕에게 가내안전, 사업번창, 제액초복을, 그리고 당 앞에서는 교통안전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영보관(霊宝館)

국보와 중요문화재만도 4만점, 미지정 문화재를 포함하면 약 10만여점에 이르는 보물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조각, 회화, 공예, 고문서 등 일본의 불교사와 미술사상 귀중한 자료가 소장되어 있으며, 봄과 가을에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